환갑을 지나면 큰 매듭은 다 지난 것이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남은 시간은 정리하는 시간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붙습니다. 예순이라는 숫자가 워낙 크게 다뤄져 온 탓에 그 뒤가 잘 그려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옛 셈을 펼쳐 보면 그 뒤에 이름이 붙은 자리가 더 남아 있습니다.

먼저 사실 관계부터 봅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오래 산 것을 기리는 잔치의 대상이 되는 나이를 늘어놓는데, 육순 60세와 회갑 61세, 진갑 62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고희 70세, 희수 77세, 팔순 80세, 미수 88세, 구순 90세, 백수 99세가 뒤에 이어집니다. 예순 뒤로 이름이 6개 더 있는 셈입니다.

이름이 붙어 있다는 사실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름을 붙이려면 그 자리를 구분해야 하고, 구분하려면 그 자리까지 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보다 오래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아흔과 아흔아홉에까지 이름을 붙여 두었다는 것은, 그 뒤를 셈에서 빼놓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오해는 어디서 생겼을까요. 환갑잔치가 유독 크게 치러지던 기억 탓이 큽니다. 크게 치른 자리는 매듭처럼 남고, 조용히 지나간 자리는 없었던 것처럼 됩니다. 잔치의 규모가 곧 매듭의 크기로 기억되면서, 그 뒤의 이름들은 있어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진짜 의미는 이름을 풀어 보면 드러납니다. 61세를 회갑이라 부르는 것은 열 개의 천간과 열두 개의 지지가 어울려 만드는 60년 주기가 한 바퀴를 다 돌고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라고 정리됩니다. 돌아왔다는 말이 핵심입니다.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처음 자리로 되돌아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는 매듭의 끝이 아니라 두 번째 바퀴의 첫 칸에 가깝습니다. 첫 바퀴가 태어나 자라고 일하고 기르는 데 쓰였다면, 두 번째 바퀴는 같은 칸을 다른 조건으로 다시 지나는 구간입니다. 같은 칸이지만 손에 쥔 것이 다르니 지나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순에 매듭이 끝난다는 말 — 옛 셈에는 그 뒤로 여섯이 더 있었습니다 · 본문 중간

뒤에 붙은 이름 하나는 유래까지 남아 있습니다. 70세를 고희라 부르는 것은 사람이 일흔까지 사는 일이 예로부터 드물다는 옛 시구에서 왔다고 전해집니다. 드물다는 말이 이름이 된 자리입니다. 뒤집어 보면 그 시절에도 일흔을 지나는 사람이 있었고, 그 드묾에 이름을 붙여 기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름이 알려 주는 것은 나이의 값이 아니라 셈의 방식입니다. 옛 셈은 사람의 시간을 한 덩어리로 두지 않고 여러 마디로 잘라 두었습니다. 마디가 있으면 지금 어느 구간에 있는지 물을 수 있고, 다음 마디까지 얼마가 남았는지도 셀 수 있습니다. 이름은 그 물음을 가능하게 하려고 붙은 표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큰 흐름을 볼 때도 방법이 비슷합니다. 남은 시간을 한 덩어리로 두면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결론이 쉽게 나옵니다. 반대로 10년 단위로 잘라 놓고 보면 질문이 달라집니다. 이번 10년에 무엇을 두고 다음 10년에 무엇을 둘지 나누는 순간, 늦음의 문제는 배치의 문제로 바뀝니다.

다만 이름은 기준일 뿐 정해진 내용이 아닙니다. 옛 나이 이름은 사람의 성취나 상태를 규정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기리는 자리를 정하려고 만든 것입니다. 몇 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록으로 읽으면 원래 없던 압박이 생깁니다. 마디는 재촉하는 눈금이 아니라 위치를 확인하는 눈금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해 볼 수 있는 순서는 단출합니다. 지금 나이를 10년 단위 구간의 어디쯤에 놓고, 그 구간이 끝나는 해를 적어 봅니다. 다음으로 그 구간 안에서만 다룰 일을 세 가지 이하로 줄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구간으로 미룰 것을 따로 적어 둡니다. 미루는 항목을 적어 두는 일이 특히 중요합니다.

다음 매듭은 사람마다 다른 자리에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고희가, 어떤 분에게는 팔순이 다음 칸입니다. 확실한 것은 예순 뒤에도 셈이 이어져 있었고, 옛사람들이 그 자리마다 이름을 남겨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이 셈은 앞일을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지금 어디쯤인지 확인하는 데까지가 이 이름들의 몫입니다.

예순에 매듭이 끝난다는 말 — 옛 셈에는 그 뒤로 여섯이 더 있었습니다 · 본문 말미

이 기사는 전통 명리와 민간 신앙에 대한 해설이자 참고용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하거나 인생의 결정을 대신하지 않으며, 진학·이직·이주 같은 결정은 실제 조건을 우선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큰 흐름과 전환점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참고가 필요하다면 작두사주의 분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종 판단은 언제나 본인의 몫입니다.

기사 작성: 작두뉴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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