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탄다는 말을 들으면 대개 나쁜 일이 벌어진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재수가 없어진다거나 하던 일이 어그러진다는 쪽으로 읽는 것입니다.
부정은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자리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에 가까웠습니다. 민간신앙에서 부정은 오염을 뜻하고, 그 반대편에는 정결이 놓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상태냐를 따지는 말이었다는 뜻으로 정리됩니다.
오해가 생긴 이유는 짐작할 만합니다. 부정한 상태가 재앙이나 질병을 부른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오염이 악귀를 자극하거나 신령의 노여움을 촉발한다는 설명이 함께 전해지다 보니, 상태를 가리키던 말이 결과를 가리키는 말로 옮겨 붙은 것으로 보입니다.
굿의 순서를 보면 이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굿에는 부정거리 또는 부정풀이라 불리는 순서가 있는데 대개 굿의 맨 처음에 놓입니다. 제사를 지내는 자리의 부정한 것을 가셔내 그곳을 신성한 공간으로 바꾸는 절차라고 설명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방향입니다. 부정을 없애는 일이 나쁜 일을 막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자리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데까지 간다는 점입니다. 청소에 가까운 절차가 아니라 자리를 다시 정하는 절차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번 치우면 끝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자리를 가셔낸 뒤에도 의례가 이어지는 동안 정결한 상태를 지키는 일이 계속됐다고 전해집니다. 치우는 절차와 유지하는 절차가 함께 묶여 있었던 셈입니다.

금기와의 관계에서도 같은 결이 보입니다. 부정은 금기와 늘 짝이 되어 존재하는데, 모든 부정은 금기의 대상이지만 금기의 대상이 전부 부정인 것은 아니라고 정리됩니다. 부정이 금기보다 좁은 개념이라는 뜻이니, 조심할 일을 두루 부정이라 부르는 요즘 쓰임과는 범위가 다릅니다.
무엇을 부정으로 보았는지도 구체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거름이나 배설물처럼 썩는 것, 그리고 죽음과 주검이 대표적인 예로 꼽힙니다. 시신의 썩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 붙어 있어, 머릿속 관념이라기보다 눈에 보이는 상태에서 출발한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이 어떻게 옮겨왔는지도 살펴볼 만합니다. 원래 자리의 상태를 가리키던 표현이 차츰 사람의 운을 가리키는 쪽으로 쓰이게 됐습니다. 오늘날 부정 탄다는 말이 대개 사람에게 붙는 것도 이 이동의 결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말을 쓸 때도 방향을 바꿔볼 수 있습니다. 무슨 나쁜 일이 생길까를 먼저 걱정하는 대신, 지금 이 자리가 정돈되어 있는지를 먼저 보는 것입니다. 옛 절차가 실제로 한 일도 자리를 치우고 다시 시작하는 쪽이었습니다.
다만 이 말을 사람에게 붙이는 일은 삼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상태를 가리키던 말이 사람을 가리키게 되면 낙인으로 굳기 때문입니다. 사별이나 투병을 겪는 이에게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어떤 해석으로도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여름이 꺾이는 이 시기는 집 안팎을 정리하기 좋은 때이기도 합니다. 처서인 8월 23일을 지나면 볕이 누그러지고 습기도 한풀 꺾입니다. 부정이라는 말을 겁내기보다 그 말이 원래 가리키던 일을 해보는 편이 남는 것이 많겠습니다.

이 기사는 민간신앙에서 쓰인 개념을 정리한 참고용 해설이며, 특정한 상태나 행동이 불운이나 사고를 부른다고 보장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나 집단을 두고 이 표현을 쓰는 것은 낙인이 될 수 있으므로 피하시기 바랍니다.
액과 불운에 관한 옛 관념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참고가 필요하다면 작두사주의 분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종 판단은 언제나 본인의 몫입니다.
기사 작성: 작두뉴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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