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이 좋지 않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씁니다. 아침부터 마음이 어수선할 때, 설명은 못 하겠는데 어딘가 걸릴 때 꺼내는 말입니다. 지금 이 말은 거의 느낌의 영역에 놓여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처음 가리킨 것은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조짐은 눈으로 보던 것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불에 지진 뼈에 생긴 금이었습니다. 갈라진 자국의 모양을 읽어 앞일을 가늠하던 방식에서 나온 말입니다.
방법도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짐승 뼈에 미리 지짐 자국을 내 두고 불로 달구면 그 자리를 따라 금이 갑니다. 금이 어느 쪽으로 뻗었고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보고 길흉을 갈랐습니다. 뼈를 태우는 일 자체가 목적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헌에도 흔적이 남았습니다. 삼국지 권30 위서 동이전 부여조에는 소를 죽여 그 발굽으로 길흉을 점쳤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발굽이 갈라진 것은 불길하게 보고 합한 것은 길하다고 읽었습니다. 무엇이 나왔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갈라졌는지가 판정의 기준이었던 셈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갈라짐 자체를 나쁘게만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갈라졌는지 합했는지를 나누어 읽었고, 그 둘에 서로 다른 뜻을 붙였습니다. 조짐은 좋고 나쁨이 이미 정해진 신호가 아니라, 읽어야 할 무늬 쪽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물도 함께 남았습니다. 김해 부원동과 봉황동에서는 사슴 어깨뼈로 만든 복골이 나왔고, 1세기에서 2세기 무렵의 것으로 봅니다. 함경북도와 부산, 진해 등지에서도 같은 종류가 확인되었다고 정리됩니다. 한 지역의 풍습이 아니라 여러 곳에 퍼져 있던 방식이었다는 뜻입니다.

쓰인 뼈의 종류는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부여에서는 소의 발굽을 썼고 가야 쪽에서는 사슴의 어깨뼈를 썼습니다. 가까이서 구할 수 있는 짐승이 달랐던 사정이 그대로 방법의 차이로 남은 것으로 읽힙니다. 무엇으로 읽느냐보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먼저였던 셈입니다.
이 방식이 언제 사라졌는지를 한 시점으로 짚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뼈를 지지는 일이 일상에서 물러난 뒤에도 말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도구가 사라지고 낱말만 살아남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쓰임이 끊긴 자리에 뜻이 새로 들어차기도 합니다.
조짐이 가리키는 자리도 그러면서 밖에서 안으로 옮겨 왔습니다. 뼈에 난 금을 보던 자리에 이제는 마음의 기척이 놓입니다. 가리키는 대상이 바뀐 것이지 말이 틀려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상이 바뀌면 확인하는 방법도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을 쓸 때 한 번 되물어 볼 여지가 생깁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실제로 있었던 무엇인지, 아니면 그 일을 두고 내가 붙인 해석인지입니다. 옛 방식에서도 본 것과 읽은 것은 나뉘어 있었습니다.
적어 두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고 그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따로 적어 두면, 나중에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되짚을 수 있습니다. 새벽 툇마루에 정한수 한 대접을 떠 놓고 앉던 습관도 그런 자리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 말은 계속 쓰일 것입니다. 다만 그 뿌리에 눈으로 보고 나누어 읽던 절차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툇마루에 놓인 백자 대접에 잔금이 가 있듯, 무늬는 늘 거기 있고 읽는 일은 언제나 그다음입니다.

이 기사는 전통 명리와 민간 신앙에 대한 해설이자 참고용 이야기입니다. 신체나 정신의 상태를 진단하거나 판정하지 않으며, 수면·감각의 변화로 일상이 어렵다면 의료 전문가와 먼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꿈과 영적 감수성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참고가 필요하다면 작두사주의 분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종 판단은 언제나 본인의 몫입니다.
기사 작성: 작두뉴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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