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9월 25일입니다. 한 달 남짓 앞이라 벌써 상차림 이야기가 오가는 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을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풀어 보면 오늘 상 위에 없는 것이 하나 걸립니다. 차례라는 말에 들어 있는 첫 글자가 마실 차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름과 상이 어디서 갈라졌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이름 쪽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차례라는 명칭이 차를 올린다는 뜻을 담은 중국 전래의 제례에서 비롯된 듯하다고 적습니다. 즉 이 말은 지내는 때를 가리키는 이름도, 상에 오르는 음식을 가리키는 이름도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올리느냐가 그대로 이름이 된 경우에 가깝습니다.

우리 쪽으로 건너오는 과정도 남아 있습니다. 같은 자료는 원래 중국의 가례에 참례와 천신례라는 비슷한 제례가 따로 있었는데, 이 둘이 우리나라의 차례로 통합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두 갈래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이름은 한쪽 것을 따라간 셈입니다. 지금 한 상에 여러 성격이 겹쳐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갈라진 지점은 기록에 분명히 찍혀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예학자 이재는 차가 본래 중국에서 사용된 것으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차를 올리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이름은 그대로 두고 물목만 뺀 것입니다. 오늘 상에 차가 없는 이유가 이 한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름은 사라진 물건의 이름표로 남았습니다. 흔히 옛것이 통째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이름과 내용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였습니다. 이름은 잘 바뀌지 않고 물목은 형편을 따라 바뀝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두 층이 겹쳐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상에 남아 있는 옛 흔적도 있습니다. 같은 자료는 차례의 절차를 무축단헌으로 원칙을 삼는다고 적습니다. 축문을 읽지 않고 술을 한 번만 올린다는 뜻입니다. 여러 번 올리고 축문을 읽는 기제사와 다른 지점이 바로 여기이고, 이 원칙은 이름과 달리 지금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차례상에 차가 없는 이유 — 이름과 상이 갈라진 자리 · 본문 중간

올리는 음식 쪽에도 흔적이 남습니다. 차례에는 별찬이나 시식, 곧 그 계절의 음식을 반드시 올린다고 정리되어 있습니다. 추석에 햇곡으로 만든 것을 올리고 설에 떡국을 올리는 습관도 여기서 갈라져 나왔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상이 함께 바뀌도록 만들어 둔 장치였던 것으로 읽힙니다.

대상 범위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차례는 주로 설과 추석에 지내며, 불천위와 4대 조상에 한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대상이 무한정 늘어나지 않도록 선을 그어 둔 것입니다. 상을 크게 벌이는 방향이 아니라 지낼 자리와 지내지 않을 자리를 먼저 가려 두는 방식이었던 셈입니다.

간소함을 두고는 최근에도 같은 지적이 나옵니다. 국학진흥원은 차례가 제사와 달리 간소함이 전통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옛 예서에 술 한 잔과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을 차리고 술도 한 번만 올리며 축문도 읽지 않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규정 쪽이 오히려 단출합니다.

다만 이것을 하나의 정답으로 받아들일 일은 아닙니다. 국립민속박물관 자료도 상차림이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함께 적습니다. 원칙이 단출했다는 사실이 우리 집 방식이 틀렸다는 뜻이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갈래가 각각 오래 이어져 온 것이 실제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올해 준비에 쓸 만한 순서라면 이렇습니다. 먼저 우리 집이 지금 지키고 있는 항목을 적어 보고, 그중 어디까지가 이름이고 어디부터가 물목인지 나눠 봅니다. 다음으로 계절 음식 한 가지를 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줄일 항목이 있다면 어른들과 미리 이야기해 상 앞에서 정하지 않도록 합니다.

앞으로도 이름은 남고 안의 것은 조금씩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한 번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를 뺀 뒤에도 이름은 그대로였고, 그 이름 아래에서 상은 몇 백 년을 이어졌습니다. 무엇을 올리느냐보다 누가 모이느냐가 이 상을 지금까지 남겨 온 힘에 가까워 보입니다.

차례상에 차가 없는 이유 — 이름과 상이 갈라진 자리 · 본문 말미

이 기사는 전통 명리와 민간 신앙에 대한 해설이자 참고용 이야기입니다. 가족 사이의 일을 진단하거나 특정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보지 않으며, 미성년자의 성향·진로는 참고에 그치고 확정하지 않습니다.

가족 사이의 흐름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참고가 필요하다면 작두사주의 분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종 판단은 언제나 본인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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