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함이라는 말이 꼭 한 번은 나옵니다. 요즘은 예단이나 예물과 뒤섞여 쓰이지만, 옛 절차에서 함은 자리도 순서도 분명한 물건이었습니다. 자주 나오는 질문 세 가지를 차례로 짚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함에 무엇이 들었느냐는 것입니다. 함을 보내는 절차는 납폐라 불렸고, 혼인이 정해졌음을 알리려고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서신과 폐물을 보내는 의식으로 정리됩니다. 옛 혼례를 여섯 단계로 나눈 육례 가운데 하나이며, 앞선 납채 다음에 놓이는 자리입니다. 그러니까 함은 선물 상자가 아니라 약속이 성립했음을 알리는 절차의 그릇이었습니다.
안에 든 것도 그 성격을 따릅니다. 폐물로는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을 각각 1끗씩 보냈고, 서신에 해당하는 혼서는 비단 겹보에 싸서 함 속에 넣었습니다. 값나가는 물건을 채우는 자리가 아니라, 글과 천이라는 두 가지를 갖추어 보내는 자리였던 셈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왜 밤에, 그것도 여럿이 갔느냐는 것입니다. 함을 보내는 시점은 대개 혼례 전날이었습니다. 다만 날의 길흉과 형편에 따라 며칠 앞서 보내기도 했고 혼례 당일에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정리됩니다. 날짜가 하나로 굳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행렬의 모습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함을 등에 진 사람 2명과 그 앞에서 청사초롱을 든 사람 2명이 함께 가는 장면이 전합니다. 불을 든 사람이 앞서고 짐을 진 사람이 뒤따르는 구성인데, 어두운 길을 걷는 데 필요한 배치이자 오는 사실을 미리 알리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흔히 이야기되는 함값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기록에 남은 것은 함이 도착하면 신부집에서 함을 지고 온 일행을 후하게 대접했다는 대목입니다. 오늘날 놀이처럼 회자되는 실랑이보다는 먼 길을 온 사람을 맞이하는 접대 쪽에 무게가 있었다고 읽는 편이 자료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받는 쪽이 함을 어디에 내려놓았느냐는 것입니다. 함이 오면 떡시루 위에 함을 내려놓았다고 전합니다. 방바닥이나 마루가 아니라 시루라는 특정한 자리를 정해 두었다는 점이 이 절차의 성격을 잘 보여 줍니다.
그 시루에 안친 떡이 봉치떡입니다. 봉치떡은 함을 보내는 의식에 맞추어 신랑집과 신부집에서 각각 마련하던 붉은팥 찰시루떡으로 정리됩니다. 양쪽이 같은 떡을 따로 준비했다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한쪽이 보내고 한쪽이 받는 절차인데 준비는 나란히 했던 것입니다.
세 답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로 모입니다. 함은 물건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약속이 섰다는 것을 양쪽이 같은 방식으로 확인하는 절차였습니다. 무엇을 넣는지, 언제 가는지, 어디에 내려놓는지가 모두 정해져 있었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다만 이 절차가 어디서나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보내는 날부터 형편에 따라 앞뒤로 움직였고, 지역과 집안에 따라 준비하는 물목도 갈렸습니다. 옛 방식 하나를 표준으로 삼아 지금의 준비가 모자란다고 볼 근거는 자료 안에 없습니다.
지금의 혼례 준비로 옮겨 볼 자리는 두 곳입니다. 하나는 무엇을 주고받을지보다 그 절차가 무엇을 확인하는 자리인지를 먼저 정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양쪽이 같은 것을 준비하고 있는지 맞춰 보는 일입니다. 옛 절차가 양가에서 같은 떡을 안친 이유도 그쪽에 가깝습니다.
함을 지고 오던 밤을 지금 그대로 되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밤이 무엇을 하려던 시간이었는지는 옮겨 볼 만합니다. 값을 겨루는 자리가 아니라, 두 집이 같은 사실을 같은 시각에 확인하던 자리였습니다.

이 기사는 전통 명리와 민간 신앙에 대한 해설이자 참고용 이야기입니다. 특정 조합의 좋고 나쁨을 판정하지 않으며, 관계에 관한 결정은 두 사람의 대화와 판단이 우선합니다.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참고가 필요하다면 작두사주의 분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종 판단은 언제나 본인의 몫입니다.
기사 작성: 작두뉴스 편집팀
사실 오류·정정 요청: [email protected]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