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혼례 사진을 보면 신부의 두 볼과 이마에 붉은 점이 찍혀 있습니다. 요즘 예식에서는 폐백 자리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인데, 왜 하필 붉은색인지 물어보시는 분이 많습니다. 자주 나오는 질문 세 가지를 정리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저 붉은 점은 무엇이고 왜 찍었을까요. 혼례를 치르는 신부는 얼굴에 연지와 곤지를 찍고 화장을 했습니다. 볼에 찍는 것을 연지, 이마에 찍는 것을 곤지라 불러 왔습니다.

붉은색을 쓴 이유는 옛 살림 전반에서 같은 흐름으로 읽힙니다. 붉은 빛이 좋지 않은 것을 물린다고 여겨 팥을 뿌리고 붉은 실을 걸던 관습이 함께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혼례라는 큰 자리에 그 색을 얼굴에 얹은 셈입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런 설명은 오래 전해져 온 해석이지 실제 효과를 확인한 기록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색에 뜻을 담아 두었던 방식이며, 색이 결과를 만든다는 주장으로 읽을 일은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신부가 입던 옷은 다 같은 옷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활옷과 원삼은 서로 다른 옷이며, 활옷은 공주와 옹주의 예복으로 쓰이다 상류층의 혼례 예복이 된 것으로 정리됩니다. 대홍색 바탕에 장수와 복을 비는 무늬를 수놓았습니다.

활옷의 내력을 조금 더 따라가면 홍장삼이 나옵니다. 18세기 이후 여기에 화려한 자수 무늬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활옷으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옷 한 벌에도 시대에 따라 층이 쌓여 있는 셈입니다.

혼례 날 볼에 찍던 붉은 점 — 자주 나오는 세 가지 질문 · 본문 중간

원삼은 결이 다릅니다. 녹색 원삼에 꽃무늬를 금실로 짜 넣거나 금박으로 얹고, 긴 띠를 매어 뒤로 늘어뜨렸습니다. 같은 혼례복이라도 색과 장식의 방식이 갈렸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지금 예식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족두리가 대표적입니다. 조선시대에 왕비를 비롯한 내외명부가 쪽머리의 가리마에 얹어 치장하던 장신구였고, 지금도 신식 혼례를 마친 뒤 폐백을 드릴 때 원삼과 함께 쓰입니다. 예식의 본식에서는 사라지고 폐백이라는 한 자리에만 남은 셈입니다.

예외도 알아 두시면 좋습니다. 지역과 집안에 따라 갖추는 품목과 순서가 달랐고, 모든 신부가 활옷을 입었던 것도 아닙니다. 상류층의 예복이 널리 알려지면서 그것이 전통 혼례복의 표준처럼 보이게 된 면이 있습니다.

세 답을 관통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혼례의 겉모습은 대부분 표시였다는 점입니다. 붉은 점도, 옷의 색도, 머리에 얹은 것도 오늘이 어떤 날이고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주변에 알리는 장치였습니다.

그래서 요즘 예식을 준비하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뺄지 고민하실 때 기준이 하나 생깁니다. 그 항목이 두 사람에게 무엇을 표시해 주는지 물어보시면 됩니다. 표시할 것이 분명한 항목은 남고, 그렇지 않은 항목은 대개 부담만 남습니다.

전통 해석에서 혼례의 절차를 두고 좋고 나쁨을 가르기보다 순서와 표시로 읽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을 갖추었는지보다 두 사람이 그 자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오래 남습니다. 인연을 두고 이야기가 오가는 절기도 곧 다가옵니다. 올해 칠석은 8월 19일입니다.

혼례 날 볼에 찍던 붉은 점 — 자주 나오는 세 가지 질문 · 본문 말미

이 기사는 전통 명리와 민간 신앙에 대한 해설이자 참고용 이야기입니다. 특정 조합의 좋고 나쁨을 판정하지 않으며, 관계에 관한 결정은 두 사람의 대화와 판단이 우선합니다.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참고가 필요하다면 작두사주의 분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종 판단은 언제나 본인의 몫입니다.

기사 작성: 작두뉴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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