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백중은 8월 27일로 오늘부터 아흐레 뒤입니다. 백중은 조상을 기리는 날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농가에서는 한 해 일꾼의 셈을 매듭짓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품삯을 어떻게 정했고 언제 받았는지, 자주 나오는 질문 세 가지를 차례로 짚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새경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새경은 농가에서 한 해 동안 일해 준 대가로 주인이 머슴에게 주던 곡물이나 돈을 가리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품삯이 통상 현물로 지불되었다고 정리합니다. 돈보다 곡식이 기본 단위였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받는 양은 일하는 사람의 자리에 따라 갈렸습니다. 같은 자료에서 일반 머슴의 새경은 대개 벼 한 섬에서 한 섬 반으로 정리됩니다. 일꾼을 상머슴과 중머슴, 그리고 보조 노동을 맡던 꼴담살이로 나누어 불렀고, 그 구분이 곧 손에 들어오는 곡식의 양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언제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한 해치를 연말에 한꺼번에 받은 것이 아니라 두 번에 나누어 셈했습니다. 상머슴을 기준으로 보면 3월에 들어올 때 받는 몫을 들새경, 11월에 나갈 때 받는 몫을 날새경이라 불렀습니다.
두 몫의 크기는 같지 않았습니다. 들새경이 한 섬에서 세 섬이었던 데 비해 날새경은 네 섬에서 여섯 섬으로 뒤쪽이 훨씬 무거웠습니다. 여기에 식사와 의복이 따로 제공되었으니, 손에 쥐는 곡식만 세어서는 한 해 대가를 다 계산할 수 없었습니다.
앞을 가볍게 두고 뒤를 무겁게 둔 배치는 한 해를 끝까지 함께 가기 위한 장치로 읽힙니다. 들어오는 쪽은 당장 쓸 것을 먼저 받아 생활을 시작하고, 남은 몫은 일을 마쳐야 받습니다. 지금의 거래로 옮겨 놓으면 착수금과 잔금의 구조에 가깝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백중에 따로 주던 돈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이 돈은 새경과 별개였습니다. 백중날 농가에서는 머슴을 하루 쉬게 하고 돈을 주었습니다. 한 해 품삯을 앞당겨 준 것이 아니라 김매기가 끝나는 고비에 얹어 준 몫이었습니다.
받은 돈은 대개 장에서 쓰였습니다. 쉬는 날을 얻은 사람들이 장에 나가 음식을 사 먹고 물건을 샀고, 그래서 백중 무렵에 서는 장을 백중장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씨름 같은 놀이판이 함께 열린 것도 사람이 모이는 날이었던 까닭입니다.
다만 이 셈이 어디서나 같지는 않았습니다. 고용 기간부터 갈렸습니다. 한 해 단위가 아니라 석 달 남짓만 일하는 계절 고용이 따로 있었고, 자리와 지역과 그해 농사 형편에 따라 받는 양이 달라졌습니다. 수치 하나를 전국의 기준처럼 읽으면 어긋납니다.
약속을 남기는 방식도 지금과 달랐습니다. 대개 1년을 단위로 고용주와 구두로 계약했다고 정리됩니다. 문서가 아니라 말로 정했으니 무엇을 언제 얼마나 준다는 합의가 어긋나면 확인할 근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등급이라는 이름이 그 빈자리를 대신 채운 셈입니다.
지금 일의 대가를 정할 때 옮겨 볼 자리는 세 곳입니다. 받는 시점을 앞뒤로 나눌 것인지, 현물이나 편의로 받는 몫까지 대가에 넣어 셈할 것인지, 그 합의를 말로 둘 것인지 글로 남길 것인지입니다. 세 가지는 액수와 별개로 미리 정해 둘 수 있습니다.
세 질문을 관통하는 답은 하나로 모입니다. 옛 셈에서 품삯은 액수 하나가 아니라 시점과 형태와 근거가 함께 묶인 묶음이었습니다. 백중을 아흐레 앞둔 오늘 되짚어 볼 것도 액수보다 그 묶음 쪽입니다. 물론 옛 관행을 오늘의 계약 기준으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이 기사는 전통 명리와 민간 신앙에 대한 해설이자 참고용 이야기입니다. 수입·재물·직장의 결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투자·계약·창업의 결정은 실제 조건과 비용을 우선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재물과 일의 흐름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참고가 필요하다면 작두사주의 분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종 판단은 언제나 본인의 몫입니다.
기사 작성: 작두뉴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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