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빛이 아직 마당에 다 들지 않은 시각에 정지의 불이 먼저 켜집니다. 처서를 닷새 앞둔 이맘때는 들일이 가장 몰리던 철이라, 하루의 첫 준비가 해보다 앞섰습니다. 그날 먹을 것을 몇 번 나를지부터 정하고 시작했습니다.

첫 끼는 해가 뜨기 전에 마쳤습니다. 밥을 일찍 먹고 들로 나가면 아침나절을 통째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첫 끼가 새벽으로 당겨지면 오전이 길어지고, 길어진 만큼 중간에 한 번 채워야 하는 자리가 생깁니다. 끼니의 배치는 해 뜨는 시각을 따라갔습니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이 새참입니다. 새참은 일을 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 먹는 음식을 가리키며 사이참의 준말입니다. 지역에 따라 술참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끼니와 끼니 사이에 낀 밥이라는 뜻이 이름 안에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들어가는 시각도 대체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아침을 새벽에 일찍 먹은 날에는 오전 10시쯤 한 번, 그리고 점심과 저녁 사이인 오후 4시쯤 다시 한 번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정리됩니다. 하루에 두 번이 기본이었던 셈입니다.

한낮에는 그늘로 물러났습니다. 볕이 가장 센 시간에 몸을 쓰면 오후를 통째로 버리게 되므로, 일을 멈추는 것 자체가 하루를 지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먹고 눕는 일은 게으름이 아니라 배치의 문제에 가까웠습니다. 쉬는 시간도 일정에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일이 몰리는 철에는 끼니 수가 늘었습니다. 육체노동이 심한 노동자나 농번기의 농부는 하루 세 끼 외에 한두 번을 더 먹었다고 기록됩니다. 세 끼에 새참 두 번을 더하면 하루에 다섯 번 상이 차려진 계산이 나옵니다.

일이 몰리던 철의 하루 — 끼니가 다섯 번까지 늘던 순서 · 본문 중간

무엇을 먹었는지도 남아 있습니다. 국수가 가장 보편적이었고, 밥을 낼 때는 김치와 나물, 된장이나 고추장을 곁들인 상추쌈 같은 푸성귀 반찬이 함께 나갔습니다. 마실 것으로는 막걸리가 거의 빠지지 않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들에서 바로 펴고 먹을 수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늘 이렇게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려의 기록을 보면 일반 백성은 두 끼가 기본이었고 점심은 간식 수준이었다고 정리됩니다. 고위 관료층과 국왕은 하루 세 끼가 기본이었으니, 끼니 수는 시대와 자리에 따라 갈렸습니다.

먹는 양도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같은 자료에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은 하루 쌀 한 되 이상으로 잡혔고, 1274년 전함을 짓던 인부는 한 끼에 약 1.88되를 먹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몸을 많이 쓰는 사람의 몫이 따로 계산되었다는 뜻입니다.

해가 기울면 마지막 상이 나갔습니다. 오후 4시쯤 새참이 한 번 있었으므로 저녁은 조금 늦어도 견딜 만했고, 대신 다음 날 새벽을 위해 일찍 자리를 폈습니다. 하루의 끝을 정하는 기준은 배부름이 아니라 다음 날 첫 시각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하루에 옮겨 볼 자리는 끼니 수 자체가 아닙니다. 일이 몰리는 날일수록 먹는 횟수를 늘리고 간격을 좁혔다는 배치 쪽입니다. 언제 쉬고 언제 채울지를 미리 정해 두는 방식은 오늘의 시간표를 짤 때도 쓸모가 있습니다.

처서는 8월 23일입니다. 이 절기를 지나면 들일의 고비가 한 차례 넘어가고, 늘려 두었던 끼니도 다시 줄어드는 쪽으로 갑니다. 다만 옛 기록의 끼니 수와 양은 그때의 노동과 형편에서 나온 값이므로, 오늘의 식사량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일이 몰리던 철의 하루 — 끼니가 다섯 번까지 늘던 순서 · 본문 말미

이 기사는 전통 명리와 민간 신앙에 대한 해설이자 참고용 이야기입니다. 질병의 예방·진단·치료 효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몸에 이상이 느껴진다면 의료 전문가의 진료를 먼저 받으시기 바랍니다.

몸의 리듬과 절기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참고가 필요하다면 작두사주의 분석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최종 판단은 언제나 본인의 몫입니다.

기사 작성: 작두뉴스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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